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책은 총 일곱국에서부터 가져온 책은 총 일곱 권이다. 그 중 하나는 최승자의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다. 최승자가 아이오와에 머물 때 썼던 일기들을 엮은 에세이고, 그립고 보고싶은 벗들 중 한 명이 프라하에 오기 직전 내게 선물했다. 최승자는 따라 쓰고 싶은 일기를 썼다. 방학 내도록 밀린 숙제 일기를 개학 전 날 쓰기 시작한 어린애처럼. 최승자의 일기를 조금 베껴 제목을 썼다. 

프라하는, 좋아했었다.

제목은 <어떤 나무들은>의 서문을 인용했다. 이 책은 사실 개정판인데, 최승자는 개정판의 서문에 30년 전 그 아이오와 여정을 회상하며,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 하는 짧은 서문을 새로 덧붙였다. 그도 20여 년이 지나고서야 덧붙인 말이다. 그런 진실된 한마디로 남게 되는 도시란. 

나도 그렇게 쓰게 될까. 프라하는 좋아했었다. 쓸 수 있을까.

프라하는 좋아했었다고. 아주 섣부른 단언을 미리 소리내 말해봐도 좋을까.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 도시를 조금의 미움도 없이 살아보고 싶어서 무척 애를 썼다. 낯선 생활을 꾸려가는 원동력은 이 도시의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가늠하는 것뿐이었다. 마땅히 찾아내지 못한 날들이 이어졌지만, 미운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도시가 나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좀처럼 웃지 않지만 -거의 모든 순간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던 외국인인- 나에게 언제나 친절했고 함부로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정한 큰 개들이 많이 살고 커피가 항상 맛있으며 맥주가 싸고…… 여기선 어느 다른 도시도 멀지가 않아서 사람을 자꾸만 무모하고 담대해지게 만든다는 것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몸을 연마하기에 탁월하기만 한 도시라는 게. 

서울도, 동해도. 어디든 조금씩 미워하면서 지냈지 않은가. 가끔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싫기도 했다. 언제나 밀려나듯 도착한 곳에서 살았고 그게 못내 지쳐 더 이상은 녹록지가 않았을 때 프라하에 왔다. 내가 살기로 선택한 최초의 도시. 지도를 펼쳐두고 골랐으니까. 드넓은 대륙 전부로 길이 나 있는 이 도시에서 여차하면 어디로든 떠돌며 지내보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든, 거의 모든 곳에서 잘 지내기. 그게 사실은 너무 어려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심리 상태를 검진할 때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지’를 묻는 항목에 언제나 그렇다고 답하던 나의 깊은 불안과 쇠약함이 프라하에선 눈이 녹듯 감춰지기를 기대하면서.

쇠락한 공업지구를 고쳐 쓰며 산다는 동네인 홀레쇼비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다.- 의 언덕을 올라 한겨울 도시의 민낯 같던 일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대로 감춰지는 것도 같았다. 

하여

프라하는

좋아했었다.

예언처럼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