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기숙사 안팎에서 몇 가지 소중한 물건들을 어이없게도 도둑맞은 뒤로, 나는 요즘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 사람처럼 굴고 있다. 적어도 내가 겪은 런던은 진짜 조금 그런 것도 같다. 얼마 전 통화하면서 할머니는 위험하니까 사람 많은 데로 다니라고 하셨는데, 대답을 고르는 잠깐 동안 여기서 사람이 많은 곳과 적은 곳 중 어디가 더 안전할지 가늠해 보게 됐다. 결론은… 둘 다 안전하진 않은 듯하다.

그래서 내가 런던에서 다듬게 된 감각은 주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느낌, 혹여 무언가 없어질까 모든 것이 손에 만져져야 마음이 놓이는 기분 같은 것들. 매일 아침 방문에 열쇠를 꽂고 오른쪽으로 돌리는 동작은 그 감각을 키우는 하나의 큐가 됐다.

이왕 사는 곳인데 이 도시를 미워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나도 런던에 푹 빠졌다고 쓰고 싶지만, 명색이 일기인데 거짓말을 쓸 순 없었다. 그래도 런던이라는 도시가 내게 준 인상에 대해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런던에 오고 첫 3주 남짓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런던 어때?”였다. 런던에서 만난 사람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그리고 나 자신도 자꾸만 내게 이 질문을 했다. 그때마다 많이 하던 대답은 서울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말이었다.

물론 많은 점이 다르다. 중심가인 소호에 골목 구석구석 무지개 깃발들이 걸려있고,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이며, 식당마다 다양한 알러지와 식이지향을 고려한 옵션이 있는 것 – 특히 이런 풍경들을 볼 때마다 한국과는 먼 곳에 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서울 같다고 생각한 것은 템즈 강을 건너며 잠실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타워를 본 것보다, 아침 9시에 사람들이 자세를 꺾어가며 지하철에 끼어 타는 모습을 보고 관악02를 떠올렸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 대도시가 으레 다 그렇다 할 수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와 사람들의 일상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내겐 새삼 신기했다.

서울과 다른 듯 비슷하다 생각한 도시에서 쏜살같이 지난 두 달 반을 뒤로 하고, 이제는 종강을 앞두고 있다. 처음 왔을 땐 5시면 깜깜하던 하늘이 이제는 7시에서야 붉게 물든다. 24시간 암막커튼을 치고 살던 내가 런던에 와서는 해바라기라도 된 듯 쨍쨍한 대낮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남은 기간 동안 런던이 또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그래서 어쩌면 다음 일기에서는 런던을 조금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