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에서 8번의 종강을 맞으면서 시험공부가 부족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어도 종강에 미련을 느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 교환학생 생활이 절반도 안 남았다는 말도 시기가 지났다. 지금 나는 런던에서 또 다른 한 학기를 끝마쳤고, 분명 큰 아쉬움과 싱숭생숭함을 느끼고 있다. 교환학생이 종강을 했다는 건 사실상 여기서의 내 신분 또는 명분 하나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1월의 레이캬비크에서 시작해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고, 사실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으며 – 이 일기는 마드리드로 떠나는 공항에서 쓰였다 – 앞으로 두 달은 더 비슷한 생활을 할 텐데. 종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교환 생활이 끝난 기분이 들면서, 지나가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미련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곳에 다시 올까? 이런 경험이 인생에 다시 있을까?
교환학생을 시작할 때쯤 독일에서의 학기를 끝내가던 한 언니는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해줬는데, 이런 생각은 어떻게 안 할 수 있지. 이것저것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싶은 욕심은 지구 반대편에 간다고 쉽게 버려질 습관이 아닌 듯하다. 여행도 최대한 많이 다니고 싶고 런던도 후회 없이 즐기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달력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이 감정은 아주 오랫동안 나랑 같이 지내왔다. 인간관계에는 물론이고, 대학입시에조차 미련이 남아서 두번째 입학을 해놓고는 이따금씩 제대로 다니지도 않은 전적대를 그리워한다. 사소한 결정을 할 때도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때의 결과를 생각하느라 매번 오랜 시간 고민하곤 한다. 쿨~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다만 그만큼 좋아하는 것이 많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련은 아직 부족하다는 불안 내지 갈망에 애착이 합쳐질 때 생기는 결정체니까. 이 많은 도시들에는 서로 다른 미술관, 서점, 바, 음악, 언어, 풍경…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하고 하나도 내려놓고 싶은 게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은 마드리드로 떠나기를 앞두고 있다. 가본 적 없는 스페인에 이미 나는 조금의 애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배운 스페인어도, 스무살에 열심히 본 스페인 드라마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즐거웠던 감정은 남아있어서다. 해가 9시쯤 지는 도시에서 저번 주 유민의 일기에서 본 쨍쨍한 햇살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겠지. 무언가 부족한 여행이 되더라도, 뜨거운 날씨가 아쉬움 정도는 녹여버릴 수 있을 테다. 조금 흐물해진 채로 미련 대신 좋은 것만 가득한 여행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