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유민 한 해를 가로지르는 열차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매년 여름 즈음이면 운전대를 잡은 나조차도 열차에서 튕겨져 나가곤 한다. 이리저리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하기는 커녕 멀찍이 떨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읊조리는 나날이다. “아 발등 따뜻해···.” 무더운 날씨, 강렬한 햇빛, 그보다도 더 뜨겁게 타고 있는 내 발등을 바라보며. 8월은 결국 오고야 말았다.
지난 주 금요일,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이미 레터가 발송된 이후 오류를 찾은 성은의 절규, |
|
|
프라하에서 성은이 좋아했던 영화관 SVETOZOR이 키노 팔레스타인과 협업해 상영을 열어준 영화 제목은 사실 <노매드랜드>가 아닌 <노아더랜드>다. 꼭 정정해 달라고 했다. <노매드랜드>는 아예 다른 영화인데, 그것도 정말 좋은 영화이니 잘못 쓴 김에 추천한다고도 전해달라더라. 영화와 거리가 먼 나는 둘 다 들어보기만 했지, 볼 생각조차 안 했던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씨네필인 성은이 추천하는 영화니 믿고 보길 바란다. 이렇게 쓴 걸 성은이 읽으면 부리나케 달려와 소리칠거다. “누나 저 씨네필 아니에요!!!!!”
하지만 지난 주 레터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확신한다. 난 성은만큼 정성스레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성은은 영화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넘치게 기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랑을 적확한 언어로 남길 수 있는 그의 능력을 나는 언제나 부러워한다.
아무튼, 다시 내 얘길 할 차례다. 레터를 쓸 차례가 다가오면 매번 이번에는 뭘 써볼까 하며 지난 몇 주 간 올렸던 트윗을 훑어보는 편이다. 대체로 내가 가장 솔직해질 때는 팔로워를 오로지 현실의 친구 몇으로만 꾸린 계정에 접속해 있을 때라, 이야깃거리가 늘 둥둥 떠다니는 편이다. 슥슥 훑어가다보면 너무 좋다···며 아련히 좋은 말들을 쏟아내다가도 갑자기 분노하고, 분노하고, 또 분노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어우 이건 너무 화나서 썼네, 삭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언제나 화를 ‘박박’ 내기 마련이니까. |
|
|
이렇게 사랑과 분노는 언제나 함께 온다. 채도는 100까지 잔뜩 높여 놓은 채로 색온도만 이리저리 조절해보면 한 가지 존재를 가지고도 사랑-분노를 모두 표현해 내보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떨 때는 진한 푸른 빛을 띠다가도 금세 강렬한 붉은 빛을 내뿜는 존재로 변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전자가 분노, 후자가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겐 정확히 반대다. 사랑함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세하게 기록해두기 위해 차가워진다. 미워함은 사고가 멈춘 채 그저 토해내는 짜증, 화, 울음이다. 전자를 행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후자의 경우 기력이 필요하다. 내 경우엔 그렇다.
사랑하니까 분노할 수 있는 거다. 동시에 분노할 기력이 남아있어야 사랑도 할 수 있다.
12월엔 세상을 향해 넘치게 분노했다. 2월 즈음엔 언론이 싫었던 것 같고, 4월엔 그냥 학계란 곳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오뉴월엔 또 무엇에 짜증을 냈으려나. 그냥 지나가진 않았을 거다. 난 이 모든 것들을 사랑/모든 것들에 분노 하고 있었다.
무섭게 다가온 7월엔 불볕 더위가 분노로 점철된 강렬한 붉음을 다 삼켜버렸나 보다. 지난 날들보다 덜 분노했고, 자연히 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한 달. 새로이 좋아해보려고 애썼던 것들의 채도를 웬만히 끌어올리지 못해 아쉬웠던 한 달이다. |
|
|
무엇보다도 내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아이들과 만나 신나게 놀고, 가끔은 지루해하며 퇴근을 기다렸던 나는 있었다. 약속에, 수업에, 관극에 바삐 곳곳을 누볐던 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와 대화하는 내가 없었다. 나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내 안을 들여다봤던 날들이 없었다. 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7월에 나는 그저 나였다.
나에게 분노하는 것도 결국 일말의 사랑이 남아서다. 분노가 남은 때에야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아 부재했던 분노란 감정을 7월 마지막날에야 그리워하는 것. 그것만이 7월의 내가 후회하는 유일한 일이다. 사랑-분노가 사라진 채도 -100의 나 자신이 후회하는 일.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전하고픈 말은,
화 낼 때 잘 하길 바란다.
동시에 나에게도, 화가 날 때 한발 나아가기 위해 애쓰자는 거다.
많이 분노하고 또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테다.
8월엔 꼭 그렇게 할 테다.
P.S. 오늘의 레터를 전송하기 전 다시 읽어보는데,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글쓴이(나···)의 기분이 나쁜 것 같은데, 읽는 이(도 역시 나···)의 기분은 꽤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레터는 분노가 가득 찬 상태였던 오후 6시 경에 썼고, 사랑으로 가득 채운 자정 무렵에 다시 읽혔기 때문이다. 단지 6시간만으로 나를 변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 야구 뿐이다. 우리 팀은 약 4주 간 단 2승을 거뒀고, 그 그중 1승은 7월의 마지막 날 겨우 쟁취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했다. 7월과 8월의 경계에서, 나는 다시 짙은 푸른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단순함에도 분노하는 날이 올까. |
|
|
.
.
.
Cue To Cue 는
매주 금요일 오전, 또 어느 때 갑자기
각기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담고
우편함으로 찾아갑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