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서울에 왔다. 싱가포르의 삶을 잔뜩 동경하면서 방황하고 유럽의 도시들을 내 마음대로 편집하고 찍고 음미했던 지난 180일은 재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살이 두 달은 그보다 10배는 빠르게 지나갔다.
6월 한 달 간은 못 먹고 못 봤던 서울의 음식과 사람들을 즐겼다. 차가운 도시라고 하는 이명이 붙었으나 내 인생의 90퍼센트 이상을 살아온 도시에 다시 발붙이니 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다. 발걸음을 어디로 향하든 내가 아는 곳. 6월의 첫 며칠간은 심지어 서울의 지하철과 어색해하기도 했으나 곧 휴대폰을 보면서도 내가 환승해야할 곳을 저절로 찾아갈 수 있었다. 익숙한 곳이라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돌아왔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지하철 신도림역 2호선 환승통로에서 나는 내 마음대로 내 몸과 감각을 확장시키고 느낄 수 있는 곳, 그러니까 내 집에 드디어 돌아왔다고 확신했다.
다만 기억이란 얼마나 야속한 것인가. 공간에 대한 기억은 금세 잊힌다는 걸 체험하고나서야 알았다. 큐투큐를 써냈던 나의 작은 기숙사 방과 교실들이 벌써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왜 어떤 기억은 영원히 안고 갈 수 없는 것일까. 그런 기억들은 늘 어떤 공간과 장소에 매달려 있고 싶다는 내 마음을 대신 정리해주려는 것처럼 저편으로 도망가버린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 정말로 맞는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걸 기억하고 붙잡고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망각이 정말 좋은게 맞아요?하고 되묻고 있다..
좀 웃긴 점은 서울에 돌아오니 내가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까맣게 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23년 삶에서 20년을 서울에서 살아놓고서는 서울의 생활방식에 - 정확히 하자면 신자유주의식의 자기계발 방식을 체화한 사람들에게 - 낯가렸다. 매일 하고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았던 180일의 삶에서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현실적이라서 비현실적인 도시에 버려진 기분이... 서울은 원래 이랬나? 공간은 분명히 익숙한데,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하여 삶을 어떻게든 다르게 꾸리고 싶어서 회피성으로 본 스포츠에 푹 빠져버렸다.
이 정도로 좋아할 건데, 왜 이제서야 이것을 좋아했을까? 왜 집 앞의 야구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을까? (결국 그 팀이 홈구장이던 팀을 좋아할 거면서도..) 익숙하다고 자신했던 서울은 아직도 모르는 거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