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코앞에 남겨두고 떠난 곳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였다. 적당히 무덥고 대체로 즐거우리라 예상했던 낙관과는 달랐던 곳. 도시는 잘못이 없고 전부 내 탓이지만 나는 왜인지 지독한 불안을 안고 열흘을 여행했다. 망망대해 위의 손바닥만 한 뗏목 위에서 사는 기분, 꽤 오랫동안은 잊고 살던 기분은 왜 불현듯 이탈리아의 나를 쫓아왔을까. 도무지 더 이상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고 갈 수 없다고 느꼈었다. 난데없이 불안을 떠안고 3초에 한 번씩 멈춰서며 걸었던 여행일지라도, 그럼에도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충분히 좋았고 아름다웠다고. 스스로에게 변호하기 위한 일기다.
원체 나는 담대하지 못하고 용기는 자주 모자라 여행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너무 모르거나 너무 먼 곳은 싫었다. 모험하듯 여행하지 못했다. 연극제에 맞춰 도착한 베니스에서 좋은 공연들을 볼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다 괜찮았는데, 피렌체에서부터 내가 썩 여행에는 부적합한 상태가 됐다. 내가 나로 걷는 것 같지가 않았고 그냥 내내 무언가 그만하고만 싶었다. 환한 대낮이었는데도 더 이상 무언가 도시에서 발견하고픈 게 없었고 쉬고만 싶어 숙소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너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걷기, 그조차 하기 힘들어했지만.
이탈리아에서 했던 것은 고작, 뭔가를 그만하고 싶어하기, 영영 과거로 되돌아가고 마는 발목을 질질 끌고 다니며 밖으로는 나서지 못하기. 같은 것뿐이었다. 로마와 아테네가 특히 그랬지. 멋진 유적지가 많은데, 사람이 너무 많고 더운 곳엔 갈 수가 없었다.
하여 내가 발견한 도시의 아름다움은 모두가 알고, 있는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곳엔 갈 수가 없었으니까. 한 걸음도 갈 수가 없을 것 같은 불안을 데리고 여행하기 위해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훔치듯 흉내내 보는 것뿐이다. 그렇게 기어코 이 어딘가 부식된 여행자의 몸-마음을 의탁할 장소들을 찾았고 여행 내내 나의 몸-마음은 무사할 수 있었다.
아 못 가겠다, 못 하겠다, 이제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나를 평안으로 이끌어준 도시의 몇몇 풍경들을 보여줘야 하겠다.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던 로마의 광장, <굿나잇굿럭>을 상영하던 로마의 야외영화관, 아테네의 해변에서 본 지중해 바다…
로마의 테르미니역 인근까지는 걸었으나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광장까지는 정말 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때 무지개로 치장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슬며시 자꾸 나타났고 그저 따라 걷다 보니 광장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기와 프라이드 플래그가 거의 정확히 반반씩 나부끼던 광장에선 내내 괜찮았고 그곳에 영원히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로마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공원의 야외영화관에 찾아가던 길도 그랬지.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가는 것도 아주 오래 걸렸으나 삼삼오오 모여 소란하게 상영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상하게 평안함을 떠나 고양감을 느꼈고 꽤 즐거웠다. 상영이 끝나고 돌아오던 길을 정말 가볍게 걸었다.
아테네에서 바다를 보러 갔던 것도. 절대로 40분이나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여차하면 내려야지 하면서 버스를 탔는데 끝까지 달려 바다를 봤다. 탁 트인 지중해 바다 앞에서 여행 내내 부식되고 쇠약했던 나의 몸-마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역시 아무런 답도 없었지만.
여행이 끝나던 마지막 날,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러 아테네 골목 어딘가 피자집에 갔었다. 역시나 환한 낮이었는데 더 이상 의욕도 체력도 없어서 피자만 먹으면 숙소 돌아가야지, 생각한 참이었다. 내내 그런 상태였으니까. 뭔가 압도되고, 지치고, 나 자신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피자집 아저씨는 너무 쾌활한 사람이었고 내가 딱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피자를 잘라주는 아저씨랑 많은 얘길 하게 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지, 그리스엔 얼마나 머무르는지, 그래서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가게를 떠날 때 아저씨는 문득 이런 얘길 했다.
나는 여기서 전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을 하루에 백 명도 넘게 만나. 그래서 그 중에 정말 좋은 사람, 특별한 사람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바로 너야. 너는 정말 positive 하고 좋은 사람이야. 절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해.
그때의 내가 영 좋아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아는데. 그때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아저씨의 질문에 센스 있는 멋진 대답을 한 것도 아닌데. 대개는 초라하고 자신 없는 대답이었을 게 분명한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갈 길이 먼데 걸음도 숨도 모자랐던 내게서 무언가 좋은 것을 알아봤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내가 여행을 무사히 마쳤음은 너무 당연하다. 아저씨에게도 말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얼마나 걸리든 내가 도착하기를 가만히 기다려줬던 도시의 그 장소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