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삶과 닿아있다고 느끼는 드라마를 만났다. 난 오픈형 눈물샘을 가지고 있는 터라 무언가를 보며 많이 우는 편인데-주에 평균 2~3회 정도 운다-지난주엔 ‘미지의 서울’을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여느 드라마처럼 상당 부분 비현실적인 설정도 녹아 있지만, 그래도 나와 닮은 구석을 찾아갈 수 있는 인물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
나는 가깝든 멀든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들뜬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장면들은 절대 현실이 되지 않음을 수차례 겪고 난 다음 생긴, 일종의 징크스다. ‘미지의 서울’에 얼굴을 비추는 많은 이들에게서도 밝은 미래를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는 이들 투성이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는 현재는 그 그림자가 너무 짙어 미래를 가려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에선 미지가 하루를 시작할 때 되뇌는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는 다짐이자 응원이자 위로의 말이 아득하고 막막한 하루하루를 가리키는, 무거운 말로 들릴 때가 있다. ‘어제는 이미 끝나버렸고, 내일은 오지 않으며, 오늘 당장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혼란한 상태’로 삐딱하게 독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오늘은 아직 모르니 충실히 현재를 살아내자는 말이 왜 이리 어렵게 들릴까.
요즘은 그 답이 과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지나간 시절을, 그 시절에 마음을 두고 좋아했던 것들을 완결하지 못하고 그저 쓰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어서. 또는 그때의 나를 충분히 아껴주지 못해서. 지나간 날들을 붙잡으며, 마음에 여러 방을 만들어 그 날들을 넣어두고 살아가니, 날이 갈수록 찾아가 숨을 방만 많아지는 느낌인 거다.
"추억할만한 일이 많으면 좋은 거지. 어떤 기억은 평생을 살게 하니까." 맞는 말이지만, 이제는 숨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5월부턴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먼저 마음의 방들을 거의 청소했고,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방은 사실 아직 엉망이다. 일기에 쓸만한 청소 일지···같은 것은 지극히 가벼운 것 뿐이지만 짧게 남겨본다.
성은의 일기에 언급된 부분이지만, <썬더볼츠*>를 보고 마블 방을 찾아갔다. 묘사하자면, 방문이 없는데 판자를 여러 개 덧대어 겨우 막아둔 모습이랄까. 페이즈3까지의 영화들을 쭉 다시 보며 마음을 정리하고 판자를 두드렸다. “이제 방 뺄 시간입니다!” 다들 저 뒤편으로 미뤄두고 있었던, 그러나 ‘나’를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었던 기억들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페이즈와 시리즈들에 걸쳐 보여준 마블은 페이즈3에서 결국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택했다. 나도, 어벤져스도, 마블도, 적당한 마무리와 퇴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다 커버린 나는 이해하게 됐다. 여기까지 고등학교 시절을 마블에 바친 사람의 마지막 편지를 마친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찬사는 언제쯤 멈출 수 있는 걸까. 그때 보고 듣고 느꼈던 게 그리운 것도 맞지만 제일 문제는 ‘그때의 내가’ 그리워 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Pass it on”, 넘겨주자. 때론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는 없다. 열광했던 시절의 나를 보내고 이제 2025년을 살아갈 때니까.
이런 내용으로 이번 레터를 구성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측 불가고, 계획은 언제든 뒤바뀌기 마련이니까. 마지막으로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 교수님께서 정말, 정말 오랜만에 올려주신 글 일부를 발췌해 싣는다. 내일의 어떤 마주침을 기대하면서, 그 마주침을 계기로 지난 날을 잘 보내줄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사는 동안 어떤 순간에 정동을 감각하게 될지는 미리 예견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미리 알 수 없듯이. 언젠가 서툴게 뱉은 한 마디 말이 순식간에 당신의 마음을 식게 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굽이굽이 모험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