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즈강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갈 곳이 있어 보였다. 아주 바쁘게 대화하며 걸었다. 아니면 앉아서 말리부칵테일이나 콜라를 한 캔 마시면서 타워브릿지를 보고 떠났다.
템즈강 바로 앞, 작은 잔디밭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포터스 필즈 공원에 간 건 어딘가 가고 싶은데 다시 말하지만 정말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염 때문에 여행 직후 꼬박 일주일을 방 안에만 있었고 그동안 내가 한 건 누워서 드라마나 먹방을 보기뿐이었다. 쨍쨍한 마드리드, 포르투, 리스본을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하필 런던이 흐렸던 며칠 침대에만 내리 있으려니 심심함과 처지는 기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외향형을 정의하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나의 경우 지인을 만나는 것에 더해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고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려야 에너지가 생긴다. 새벽에 혼자 방에서 공부할 때도 음악 말고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거나 카페 백색소음, 사각거리는 ASMR을 틀어놔야 집중이 된다. 그러니 일주일을 혼자 방 안에 있는 건 내게 꽤 고역이었다. 런던을 즐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속에서는 더더욱.
몸이 조금 나아지자 밖에 나가고 싶어졌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유럽을 돌아다니며 항상 부러워하고 원했던 일은 미술관이나 공원 따위에 하릴없이 앉아있기였다. 상태가 좋을 때 할 것은 쌓여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로망을 실현할 때라고 생각했다.
런던은 느끼고 싶지만 멀리 가긴 싫고 5시에 닫지 않으면서 누울 수 있는 탁 트인 곳에 가고 싶어... 정도의 생각으로 - 쓰고 보니 이러니까 갈 곳이 없지 싶다 -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지도 속에 초록색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잔디밭에 누워 가방을 베고 몇 년을 미루던 한 소설을 반쯤 읽었다. 책에서 파리 뛸르히 정원과 베를린 동역을 마주쳤고 지난 여행들을 조금 회상했다. 두 장소는 이제 모두 내가 애정하는 곳이 되었다. 그닥 거창한 이유는 없고 딱 그 순간 날씨가 맑았어서라든가 독일어로 동역이 뭔지 외우게 돼서라든가 정도의 이유로.
런던도 내가 사랑하는 곳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이제는 처음 큐튜큐를 썼을 때보다 덜 고민하고 더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아쉬움에 미화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첫 문장과 다소 모순되지만 공원에 간 다음부터는 런던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바쁜 며칠을 보내고 있다. 이별에 약한 편이지만 이번 친구들과의 작별인사는 왜인지 곧 다시 만날 것만 같은 마음에 씩씩하게 해냈는데, 다음 인사는 런던에게 고할 차례라고 생각하니 괜히 어물쩡 피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공간과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공간과의 이별은 때로 사람과의 이별보다 어렵고 어색하다.
그래도 우물쭈물하며 인사를 건네보자면, 다른 친구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