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고 했다. 집 나간 학생들을 돌아오게 만드는 가을 개강 앞에서 그 속담을 곱씹어 본다. 실 없는 소리만 늘어놓게 되는 걸 보니 정말 학기가 시작됐다.
많은 것이 ‘돌아왔다’. 더 정확히는 그 모든 곳으로 내가 돌아갔다. 다시 학교로 향한 나를 반기는 건, 하루하루 공사가 확대되는 사회대 16동, 냉방이 끊긴 연구실, 이번 학기의 모든 강의를 듣게 된 낯선 우석경제관, 일주일에 못해도 200페이지는 넘는 것 같은 리딩의 향연. 매일 팔자에도 없는 글을 읽고 쓰려니 어딘가 불편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팔자에도 없는’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쓰면 안 됐던 거다. 엊그제 점을 보러 다녀온 엄마는 그분이 내 생시와 이름을 보자마자 “엄마가 선비를 낳았네”라고 했다며 네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웃었다. 무속의 국가에 살며 오하아사 별자리 순위를 맹신하는 나는 그 평가도 기꺼이 믿기로 했다. 나는 글 읽고 글 쓰는 선비가 될 운명이구나, 하며.
첫 주엔 간을 좀 보려고 했다. 이 수업은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할 건지, 아이패드로 손 필기를 할 건지 고민하고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을 가늠해 보겠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개강 첫 주에 으레 해왔던 것처럼 ‘OT는 일찍 끝내주시지 않을까?’하는 삿된 기대를 가졌던 것이 문제였을까? 한국어가 그리워지는 리딩 리스트에 압도되다 못해 쫓아가려 애쓰다 결국 한 주 만에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 첫 감기가 요란히 가을을 반겨줬다.
생각해보니 무언가를 시작할 때 꼭 크게 앓았다. 매번 개강 첫 주엔 병원에 갔던 것 같고, 짧은 교환학생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바로 코로나에 걸려 꼬박 일주일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렇게나 변화를 싫어해 익숙한 곳으로 자꾸 돌아오나 보다. 계속 하던 공부를, 계속 다니던 학교에서, 계속 의지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 내 인생에 허락된 유일한, 또 평탄한 길 같이 느껴진다. 한 번 좋아하게 된 것을 쉬이 놓아주지 않는 나의 고집스러움을 체감한다. 이렇게 회귀했다. 긴 통학길에 지쳐가며 언제쯤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나의 개강 첫 달로 돌아왔다. 바뀐 건 새로 발급 받을 학생증 뿐이다. 내 마음가짐조차 변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내게 성큼 다가온 시작이었다. 요즘 자주 되뇌는 노랫말이 있다. 아는 것 보단 모르는 게 많지만 어차피 인생은 짧은 마디의 노래. 그러니 끝이 났다 해도 언제든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두 번째 연주는 더 듣기 좋겠지, 적어도 더 즐기며 연주할 수 있겠지 기대하면서, 시작하는 9월에 난 지독한 ‘회귀물’에 뛰어들었다.